UNREAL KOREA

SeoulExhibitions

꽃으로 덮인 보라매,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37.4932° N 126.9197° E — JUN 14 2025

며칠 동안 붙들고 있던 설계를 토요일 아침에 끝냈다. 일은 끝나 있었지만 머리는 아직 그 안을 돌고 있었다. 책상 앞에 그대로 앉아 있는다고 해서 식을 머리도 아니어서, 나는 휴대폰과 카메라를 챙겨 공원 산책이라도 다녀오기로 했다.

어디를 걸을까 하고 생각했을 때 맨 먼저 떠오른 것이 보라매공원이었다. 얼마 전부터 거기서 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다고 했다. 어디서 처음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름이 이런저런 자리에서 몇 번인가 지나갔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같은 생각을 했다. 서울에서도 손꼽게 크고, 늘 말끔하게 손질되어 있어서 평일에도 사람이 끊이지 않는 공원인데, 그런 곳이 한 철을 통째로 단장했다면 대체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집을 나섰다.

현관에서 신을 신는데 옹이가 따라 나와 신발장 앞에 앉았다. 배웅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나서기 전에 허리를 굽혀 그 동그란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 다녀올게, 하고 인사도 했다. 옹이는 문이 닫힐 때까지 그 자리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몽이는 어디서 자는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오전의 2호선은 한산했다. 듬성듬성 빈자리가 있었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느슨해 보였고, 서두르는 사람은 환승 통로에만 있었다. 신대방역이 가까워질 무렵 열차는 지상 위를 달리고 있었다. 창으로 볕이 통째로 들어와서 사람들은 하나둘 눈을 가늘게 떴고, 열차에서 내리자 승강장도 하늘 아래였다. 거리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 동안 나는 줄곧 공원 생각을 했다. 공원 하나를 한 철 동안 통째로 단장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일일까. 꽃을 몇 포기나 심어야 그 큰 공원이 달라 보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계단이 끝나고 거리가 시작되었다.

역을 나서자 공원 입구가 바로 눈앞이었다. 정문 위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길을 따라 세워 놓은 안내판마다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 5월 22일에 시작되어 11월 2일까지 이어지는, 반년에 가까운 행사였다. 같은 이름을 대여섯 번쯤 지나치고 나니 그 이름은 어느새 뜻을 잃고 하나의 무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담벼락부터가 꽃이었다. 페튜니아가 벽면을 온통 덮어서, 보라와 분홍과 붉은빛이 벽돌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위쪽 난간에서 시작된 줄기들이 벽돌 몇 단을 타고 내려왔는데, 나는 그중 한 줄기가 어디까지 내려왔는지 눈으로 좇다가 모퉁이에서 그만 놓치고 말았다. 아직 입구에 지나지 않는데 여기까지 손이 닿아 있었다. 입구가 이 정도라면 안쪽은 대체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셈이 저절로 섰고, 그 셈이 내 걸음을 앞으로 당겼다.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길은 곱게 단장되어 있었지만 공원의 하루는 평소의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볕 아래를 통통 뛰어가면 주인이 몇 걸음 뒤에서 느릿느릿 따라갔고, 그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팔을 크게 휘저으며 걷는 사람은 같은 자리를 두 번 지나갔는데, 두 번째에도 첫 번째와 똑같은 속도였다. 연못가 벤치에는 버드나무 그늘이 끝나는 자리까지만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늘의 경계가 곧 앉는 자리의 경계였다. 6월의 볕은 이미 그런 볕이 되어 있었다.

박람회를 보러 온 걸음과 그저 바람을 쐬러 나온 걸음이 한 길 위에 섞여 있었다. 차림새로는 도무지 갈리지 않았고, 오직 속도로만 갈렸다. 안내판 앞에 멈춰 서는 쪽과 그냥 지나쳐 가는 쪽. 나는 정원을 보러 와 놓고서도 자꾸만 그 걸음들 쪽으로 눈이 갔다. 꽃은 도망가지 않지만 사람은 금방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라고, 한참 뒤에야 생각했다.

잔디광장 한가운데

수풀 사이로 난 길을 걷고 있는데, 나무들보다 높이 솟은 분홍색 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나무 위로 머리만 떠 있으니 우선 크기부터가 잘못되어 있었고, 걸음은 저절로 그쪽으로 갔다. 가까이 가서야 해치와 친구들이 잔디광장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이 오래 그려 온 상상 속의 짐승이 분홍색 인형이 되어 광장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광장은 넓었다. 나무 그늘을 벗어나자 하늘이 한꺼번에 트였고, 깎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잔디 냄새가 볕 냄새와 함께 밀려왔다. 그렇게 넓은 자리에서도 눈은 자꾸만 인형들에게로 돌아갔다.

인형 앞에는 줄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줄이 서 있었다. 사람들은 차례를 기다렸다가 앞으로 나가 서고, 팔을 들거나 손가락을 펴 보이고, 셔터 소리가 끝나면 옆으로 물러났다. 물러난 자리는 곧 다음 사람이 채웠다. 포즈는 몇 가지로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다들 엇비슷했는데, 그 비슷함이 우습다기보다는 어딘가 의젓해 보였다. 순서를 지키고, 앞사람의 사진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용히 비켜서고, 제 차례가 오면 웃는 것. 낯모르는 사람들이 광장 한가운데서 그런 규칙을 말없이 합의하고 있었다.

한 아이만이 제 차례가 되어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 뒤에 바짝 붙어 서서 해치를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시선이 인형의 얼굴에서 한동안 내려오지 않았고, 뒤에 선 사람들이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가 아이의 어깨를 두 번 눌렀다가 놓았다. 재촉이라고 하기에는 가볍고 달램이라고 하기에는 분명한 손이었다. 결국 아이는 인형을 등지지 않았다. 등을 돌리는 대신 인형을 마주 본 채로 사진에 찍혔다. 아이에게 그것은 배경이 아니었을 것이다. 배경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큰 것이 눈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인형 하나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 번씩 웃게 만든다는 것이, 서서 지켜보는 동안 내내 이상했다. 그리고 그 이상함이 싫지 않았다.

광장을 둘러싼 계단에는 트렐리스를 타고 오른 장미가 붉은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파란 격자와 붉은 꽃이 맞물린 그 한 칸 아래로 사람들이 줄지어 드나들었다. 터널이라고 해야 몇 걸음이면 다 지나는 길이인데, 다들 그 몇 걸음을 아까워하듯 천천히 걸었다. 평소의 나라면 아무 생각 없이 오르내렸을 계단이었다. 그 계단에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일부러 멈춰 서 있었다.

장미는 한 가지 색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붉은 것과 분홍인 것과 흰 것이 한 화분 안에 섞여 피었고, 화분 앞에서 걸음들이 멈추고, 멈춘 자리마다 카메라가 올라갔다. 다들 가장 탐스러운 송이를 고르고 있었다. 훑어보고, 되짚어 보고, 하나로 정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놀랄 만큼 서로 비슷했다.

장미 화분들을 지나서 광장 가장자리를 따라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냄새가 먼저 왔다. 커피 냄새와, 설탕이 눋는 달큰한 냄새였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냄새였고, 고개를 돌리자 과연 광장 한켠에 푸드트럭이 줄지어 서서 그 냄새를 한낮의 볕 속에 풀어 놓고 있었다. 냄새는 그늘보다 멀리까지 갔다. 트럭 앞으로는 줄이 생겼다가 줄어들기를 오후 내내 되풀이했고, 멀리서 찾아온 걸음이든 동네 산책을 나온 걸음이든 그 앞에서는 한 번씩 느려졌다. 나도 잠깐 느려졌다. 마시지도 않을 커피 냄새를 두어 번 더 맡고 나서야 광장을 빠져나왔다.

수국 쪽으로

광장을 벗어난 뒤에도 볕은 그대로였다. 정오를 지난 볕이 이제 정수리 위로 왔고, 그늘을 골라 딛는 걸음이 나 말고도 여럿이었다. 손차양을 만드는 사람, 모자를 고쳐 쓰는 사람, 접는 부채를 꺼내 드는 사람. 광장의 소리가 등 뒤에서 잦아들자 공원이 원래 내던 소리가 되돌아왔다. 잎이 스치는 소리, 멀리서 공 튀는 소리. 그런 소리들 사이를 나는 얼마 동안 말없이 걸었다.

그러다 길이 꺾이는 자리에서 수국 더미와 만났다. 분홍과 자주, 연보라와 청보라가 한자리에 무더기로 부풀어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색들이 끼어 있었다. 수국은 6월의 꽃이고, 지금이 꼭 6월의 한복판이었다. 제철의 꽃이 있는 힘껏 부풀어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계절이 제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안심 같은 것이 들었다. 한 가지 색만 모아 두었어도 충분했을 텐데, 이렇게 섞어 놓으니 눈이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 좀처럼 정하지 못했다.

그 한가운데에 구멍이 송송 뚫린 연분홍 조형물이 폴짝 뛰어오른 자세로 서 있었다. 강아지였다. 꽃과 똑같은 빛깔이어서, 어디까지가 수국이고 어디부터가 조형물인지는 몇 걸음 더 다가가서야 겨우 갈렸다. 그때까지 나는 감쪽같이 속고 있었던 셈인데, 속고 있는 동안이 싫지 않았다.

길에서 마주친 것들

길을 따라가자 데이지가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심어 놓은 자리를 넘어 보도 가장자리까지 번져 나와 있었고, 흰 꽃잎과 노란 꽃심뿐인 수수한 꽃이었다. 장미의 붉은빛을 실컷 보고 온 눈에는 그 흔한 꽃이 오히려 새롭게 보였다. 보고 있으면 기름진 것을 연달아 먹고 난 뒤의 흰죽 생각이 났다. 어디에서든 피어나서 어디에서도 주인공이 되지 못하던 꽃이, 여기서는 길 하나를 통째로 맡고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오래 그 앞에 서 있었다.

잔디밭 한쪽에는 서울 미니달이 떠 있었다. 떠 있다기보다는 놓여 있었다. 한낮의 빛 속에서는 표면의 요철만 보여서, 아직 불을 넣지 않은 간판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해가 지면 여기에 노란 불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그 아래로 모여들 것이다. 그 장면을 잠깐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지만, 그때까지 남아 있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밤의 보라매는 그렇게 보지 못한 채로 남았다.

작가의 정원이 길을 따라 잇따라 나타났다. 풀과 키 작은 나무로 짜 놓은 정원 너머로 도심의 빌딩들이 흐릿하게 서 있었다. 정원 하나를 지나는 동안에는 여기가 도시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잊었고, 정원과 정원 사이에서 빌딩의 윤곽을 보면 그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잊었다가 떠올렸다가 하는 사이에 걸음은 저절로 느려졌다 빨라졌다 했다. 정원이 모두 몇이나 되는지 세어 보다가 예닐곱에서 그만두었다.

길 한쪽에는 오래된 장미 터널이 있었다. 박람회를 위해 새로 꾸민 자리가 아니라 공원이 오랫동안 길러 온 덩굴이라는 것을, 굵어진 가지의 마디가 말해 주고 있었다. 그 가지에도 붉은 꽃이 그득 달려서 포플러 사이로 무겁게 늘어져 있었다. 새로 들인 정원들 사이에서 이것 하나만이 계절을 여러 번 겪어 낸 셈이었다. 잔치에 온 손님들 틈에 주인 혼자 말없이 서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지나가면서 눈인사 비슷한 것을 했다.

그러고는 덩굴 아래 잠깐 서 있었다. 이 터널이 지나온 계절들을 나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 꽃이 유난히 그득하던 해가 있었을 것이고, 시원치 않던 해도 있었을 것이다. 그 아래를 지나간 우산들과 교복들과 유아차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가운데 단 하루도 보지 못했고, 오늘 하루를 보았다고 해서 이 공원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가져간다.

터널 아래로 떨어진 꽃잎이 길바닥을 온통 분홍으로 덮고 있었다. 그 위를 까치 한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꽃잎을 밟는 발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구경도 감탄도 없이, 그저 제 볼일이 있는 걸음이었다. 사람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자리 한가운데서 저 새 한 마리만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원보다도 그 걸음이 오래 눈에 남았다.

조금 더 걸어가자 돌로 쌓아 올린 정원이 나왔다. 검은 돌 틈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소리도 없이 흰 김만 소리 없이 올라와서, 돌을 감싸고 낮게 번져 나갔다. 여름날 걷어 낸 화분 밑에서 흙이 김을 올리는 것과 비슷했지만 그보다 훨씬 서늘했다. 그 자리만 공기가 달랐다. 팔뚝의 땀이 식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고, 식는 동안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눈으로만 걷던 길에서 잠깐 살갗으로 건너온 자리였다.

돌 정원을 지나 근처 벤치에 앉았다. 가방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나서야, 반나절을 쉬지 않고 걸었다는 것을 알았다. 앉고 나니 공원은 또 다른 속도가 되었다. 걷는 동안 배경이던 것들이 하나씩 앞으로 나왔다. 유아차가 지나가고, 자전거가 지나가고, 아까 입구에서 본 듯한 강아지가 이번에도 주인보다 몇 걸음 앞서서 지나갔다. 그 간격은 여기서도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십 분쯤 그렇게 앉아 있다가, 빈 물병을 가방에 넣고 일어났다.

그늘에는 공원 카트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밥때이거나, 다음 새벽까지는 일이 없거나 할 것이다. 이 많은 꽃이 저절로 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새벽을 빌려서 핀 것이라고 생각하니, 세워 둔 카트 한 대가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나는 카트를 지나 다음 정원으로 걸었다.

보라색으로 묶인 자리

걷다가 줄지어 선 사람들과 만났다. 이 공원에서 줄이라는 것은 푸드트럭 앞에나 서는 것인 줄 알았는데, 넝쿨과 등불을 두른 아치 아래로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아치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메타몽 가든. 꽃만 보러 온 걸음에 포켓몬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줄에 선 사람은 어른이 반이 넘었다. 아이 손을 잡고 온 어른도 있었지만 아이 없이 온 어른도 적지 않았다. 줄은 금세 줄었다.

보라색 수국 사이사이에 메타몽이 한 마리씩 앉아 있었다. 수국과 똑같은 연보랏빛으로 몸을 둥글게 부풀린 채, 하나씩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꽃밭 하나가 통째로 그들의 차지였다. 무엇이든 따라서 변하는 것이 저 캐릭터의 재주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수국을 따라 하다가 만 것처럼 앉아 있었고, 그 어중간함이 오히려 꽃 사이에 잘 어울렸다. 꽃으로만 채워져 있던 정원에 캐릭터가 들어앉았는데도, 색 하나로 묶이고 나니 이상하게도 어색하지가 않았다. 아까 수국 속의 강아지가 그랬던 것처럼.

발자국을 따라

나가려다가 작은 트랙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만을 위해 낸 길이라고 했다. 보라색 바닥에 노란 발자국이 콕콕 찍혀서 동그랗게 이어져 있었고, 마침 뛰고 있는 강아지는 없었다. 나는 그 빈 트랙의 발자국을 좇아서 두 바퀴를 돌았다. 어른 걸음으로 몇십 걸음이면 도는 작은 원이었다. 한 바퀴는 나도 모르게 돌았고, 두 바퀴째는 알고서 돌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늘 곁에 있던 공원이, 그렇게 하루를 다 받아 갔다.

나가는 길은 들어온 길을 거슬러 갔다. 볕이 눕기 시작해서 아침에는 없던 그림자가 길마다 길게 나와 있었고, 같은 길인데도 어딘가 조금 다른 곳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잔디광장 쪽에서는 아직 셔터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인형들은 저 자리에 선 채로 밤까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문을 나서면서 담벼락을 다시 지났다. 아침에는 벽을 덮은 꽃만 보였는데, 나오면서 보니 벽돌 아래 보도에 떨어진 꽃잎이 밟혀서 색이 뭉개져 있었다. 아침에 눈으로 좇다가 모퉁이에서 놓친 그 줄기가 어디에서 끝났는지는, 끝내 찾지 못했다. 놓친 것은 놓친 채로 두고, 나는 역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오르는 동안에도 보랏빛은 아직 눈 안쪽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오늘 본 것들 가운데 무엇이 오래 남을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런 것은 늘 한참이 지난 뒤에야 문득 정해지곤 했다.